본문 바로가기

세상사는 이야기와 꽃과 나무

꽃향기가 묻어나는 회룡사(回龍寺)

2011-06-05 11:16:54
토요 등산  갈까 말까?  망설이다  무르익은 봄의 끝자락을 잡으러 출발
미아역    창동역     회룡역(의정부시)로  21분은 검색 결과
조심조심 회룡사로 출발하니   모든 나무 중 으뜸인 神木으로    오랜세월 풍파를 견뎌낸 회화나무가 반긴다.
작년 창덕궁에서는 11월이었기에 잎을 못 보았는데 어제 보니 작은 아카시아 잎과 비슷하다.
 
등산로는 작업 중     신경을 많이 쓰는 듯하고
계곡은 물과 바위의 조화로운 모습에 그 옛날에는  아마도 나뭇군과 선녀의 놀이마당으로 부족함이 없었겠다.
다른 일행은 사패산쪽으로  난 회룡사에 머무는 수 밖에
도착하니 6백전 역사 속으로 안내한다. 회룡사의 창건에 세가지 설이 있단다
  ① 1398년(태조 7) 태조가 함흥에서 한양의 궁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있던 왕사 무학을 방문했다. 무학은 1394년에 정도전(鄭道傳)의 미움과 시기를 받아 이곳 토굴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이 때 태조의 방문을 받았던 것이다. 태조는 여기서 며칠을 머물렀고, 이에 절을 짓고는 임금이 환궁한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회룡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1881년(고종 18년)에 승려 우송(友松)이 쓴 <회룡사중창기>에 전하고 있다.
  ② 함흥에 내려가 있던 태조가 1403년(태종 3년) 환궁한 뒤 이곳에 있던 무학을 찾아 왔으므로 무학대사가 태조의 환궁을 기뻐하여 회룡사라 했다는 것이다.
  ③ 1384년(우왕 10년) 이곳 도봉산에서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창업성취를 위한 기도를 했는데, 이성계는 지금의 석굴암에서, 무학은 산등성이 가까이 있는 무학골에서 각각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 뒤 이성계가 동북면병마사 라는 직책을 맡고 요동으로 출전하자 무학은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그의 영달을 축원했다고 한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으로 와서 무학을 찾아보고 절 이름을 회룡사로 고쳤다고 한다. (자료 : 회룡사 홈페이지).
 
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절을 방문할 때마다  이 자리에 절이 있다는 것에 옛 분들에게 감사한다.
주위 풍광이나 물과 산과의 절묘한 지점에 ....
잘 가꾸어진 꽃들에  가꾸고 계시는 분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