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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당 자료방

[스크랩]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大雄寶殿) / 원교 이광사

2013-12-19 19:18:32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大雄寶殿) / 원교 이광사

원교 이광사가 쓴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 편액.
침계루
해탈문

해남 대둔산 대흥사에는 서예인들의 발길이 잦다. 산세가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서예인들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는
원교 이광사의 묵적을 만날 수 있어서다. 한자로 씌여진 이 곳의 편액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원교 이광사가 쓴 동국진체
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원교의 묵적은 이 곳 말고도 광주ㆍ전남지역에서 상당수 발견된다.

남도는 한국 서단에서 조선풍의 서체인 '동국진체'를 꽃피운 서예의 고장이다. 이같은 화려한 전통을 갖고 있는 남도서
단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실험성으로 전통과 현대 서예를 아우르는 '현대서예의 메카'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18세기 영ㆍ정조시대 조선조 특색을 잘 담아낸 '동국진체'는 옥동 이서와 공재 윤두서,백하 윤순을 거쳐 원교에 이르러 완성됐다.
이광사는 '원교체'라는 특유한 필체를 만들었고 '원교서결'이라는 자료를 남겨 후진양성과 서예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그가 완도 신지도
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병풍족자, 비지, 서첩 등을 써달라는 주문이 많아 날을 택해 서장이 섰을 정도로
그의글씨는 당시 선풍적    인기
를 얻었다. 서장은 요즘 같으면 전람회. 그러고보면 원교는 한국 미술인중에서 최초로 전시회를 연 작가인 셈이다.

조선풍 서체 '동국진체' 완성

완도 신지도에 유배된 이광사에 의해 완성된 동국진체는 해남, 강진, 보성, 광주, 전주를
거치면서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은 동국진체는 다시 지방으로 확산,
전국적인 붐을 이뤘다. 지방예술이 중앙에 영향을 미치는 역류현상을 일으킨 것.

이광사ㆍ손재형 등 묵향 빛내

결국 동국진체는 판소리에 이어 두번째로 서울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지방에서 태동한
문화였다. 이런 특성으로 동국진체는 남도 특유의 한과 풍류가 응축된 독특한 남도 서예의 밑바탕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남도서예는 여말선초로부터 시작된 남도 출신 학자들의 출사와
낙향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들의 높은 학문은 남도 서예의 진보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
을 끼쳐왔음은 불문가지 사실이다.
주요 인물로는 면앙정 송순, 사촌 김윤제,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송강 정철, 노사 기정진 등이 그들이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의 인품'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던 이들은 인품이 갖춰지지 못한
사람이 서예를 하는 것은 재주로 글씨만 쓰는것으로 여겼다. 이는 곧 남도 서예정신의 근본이 됐다.

이렇게 원교에서 완성된 동국진체의 서맥은 창
암 이삼만, 소치 허유, 설주 송운회, 소전 손재형,
서예에서도 특별한 안목을 가졌던 의재 허백련 등 많은 남도의 서예가들의 붓끝에 면면히 어어
졌다. 또한 한국 서예의 거장으로 일컫는 추사 김정희도 남도를 거쳐 추사체를 완성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추사는 소
치를 통해 이 지역에 추사체를 확립해나가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진도 출신 소전 손재형은 추사 이래의 대가로 추앙받을 정도로 '소전체'라는 서체를 완성, 한국 서예계에 뚜렷한 발자취
를 남겼다. 진도 벽파진에 한글 예서체로 씌여진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는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또 일본식 '서도'라는 용어 대신 '서예'를 주장, 독자성을 강조했다. 즉 '서즉화 화즉서'라는 전통적 의미와 함께 현
대 예술성에 입각한 새로운 서예운동에 적극 참여한다는 민족적 의지의 표현이었다. 소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일화는 그가 일제 강점기에 추사 연구가인 일본 후지즈카에 의해 반출된 국보 '세한도'를 우여곡절끝에 일본에서 회수해
온 일이다.

송곡 안규동은 보성 출신으로 '송곡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남겼다. 그는 또 근원 구철우와 함께 광주서예연구회를 창립
해 후진양성과 우리 고유의 필묵정신을 부흥시키는 서예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해남 대둔산 대흥사에는 서예인들의 발길이 잦다. 산세가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서예인들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
는 원교 이광사의 묵적을 만날 수 있어서다. 한자로 씌여진 이 곳의 편액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원교 이광사가 쓴 동국
진체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함평 출신 평보 서희환은 1968년 국전 사상 최초로 서예부문에서 대통령상을 수상, 주목을 받았다. 그것도 한글 서예로 최고상을 수상함으로써 화제와 찬반의 격론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한국 서예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온 남도 전통서예는 현대서예에서도 개척자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서예를 의사소통
과 기록만의 목적이 아닌 미술품으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 남도 서예의 현대성에는 끊임없이 이어온 전통 서예의 힘이 뒷받침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광주ㆍ전남지역의 일부 중견 서예가들은 전국 최초로 '한국현대서예운동'을 주도, 많은 공모전에 '현대서예'부문을 신설하는 성과를 낳으며 '남도=한국 현대서예' 메카로 각인시켰다.

실험성 글씨로 세계 브랜드화

이처럼 남도서예는 남도문화의 특성이 보수적이고 원형 유지적 차원과는 달리 역동적이고 파격적인 새로움을 주도하
고 있다.

전종주 교수는 "현대 서예는 전통서예의 창조적 계승으로 점(點)과 획(劃)의 유기적 융합과 해체와 분산 등을 통해 현
대에 맞게 역동적인 CI와 BI, 그리고 심벌마크 등에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처-성산성주배씨

출처 : 땅끝양파즙 해남(061)536-3313

 

글쓴이 : 민간외교관김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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