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7 15:14:00
국화 향기와 한 두잎 단풍이 되어가는 산 자락의 간송미술관,
행렬은 끝이 없이 인파로 덮여 있었다.
서예를 시작한지도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걸음마를 하고 있는 내모습이 초라해졌으나 간혹 알고 있는 글짜나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시간을 내어 온 것만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일보에 실린 안내 글을 적어보며 아직 못 보신 분들도 다음주 까지이니 시간을 내시어 묵향을 함께하시를 바라며.
조선시대 미술 대가 작품 다 모였다 [중앙일보]
간송미술관, 12일부터 ‘조선서화전’
사임당 신씨·단원·겸재·안평대군·추사 …
일본서 되찾아온 혜원의 풍속도도 나와
보화각(葆華閣)’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일제강점기 10만석 재산을 모조리 털어 우리 문화재를 모은 간송 전형필이 1938년 서울 성북동에 설립했다.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이에 ‘보배를 두는 집’이라 이름 짓고 현판을 썼다. 서양식 2층 건물은 서울 종로통에 화신백화점을 설계했던 박길룡(1898~1943)의 작품이다. 62년 간송이 타계한 뒤 3남 영우씨가 보화각을 이어받았다. 66년엔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직이었던 최완수 씨가 보화각에 영입되면서 이름이 간송미술관으로 바뀌었고,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설립됐다. 71년 ‘겸재 정선전’으로 시작, 오로지 소장품만으로 연 2회 전시를 연 게 75회째다. 봄·가을 딱 2주간의 무료 전시 외에는 소장품 연구에 골몰한다. 소장품 수는 한사코 공개하지 않는다.
보화각은 이름 그대로 보물창고다. 보물을 들고 오는 이에게 흥정하지 않고, 대가의 명작은 100점 이상씩 수집한다는 게 간송의 원칙이었다. 간송미술관은 덕분에 여기저기서 작품을 빌리지 않고도 겸재·단원·추사·오원의 전시를 열 정도의 소장품을 확보했다. 보화각은 문화재 연구자들의 필수 코스다. 이원복 국립전주박물관장은 “베일에 싸인 삶을 산 오원 장승업이 1897년 타계했다는 사실, 신윤복의 본명이 신가권이라는 사실 등은 간송미술관이 간직해 온 유물을 통해 밝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12일부터 열리는 간송미술관의 올 가을 전시는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 조선서화전’이다. 최완수 연구실장은 “중국 성리학을 따르던 조선 전기엔 중국 화풍을 견지하다가 조선 성리학의 완성, 고증학과 실학 등 이념의 확립에 따라 겸재의 진경산수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으로 조선화의 완성을 본다”고 요약했다. 그는 “조선왕조 각 시기를 대표하는 서화를 내놓아 이것만 봐도 조선 서화의 변천사를 알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조선 전기 유자미, 안평대군, 사임당 신씨를 비롯해 진경산수화의 효시를 이뤘다는 조선 중기 조속의 까치도로 이어진다. 조선남종화를 확립한 현재 심사정, 진경산수화를 꽃피운 겸재 정선, 조선화를 절정에 올린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등 쟁쟁한 대가들의 작품을 직접 보는 안복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짐승의 터럭 한올한올을 사실적으로 그려 변닭·변고양이라고 불렸던 변상벽, 나비 그리기가 장기라 해 남나비라 불린 남계우의 희귀작, 추사와 그 제자들의 작품도 나왔다.
특히 겸재가 70대 중반에 그린 ‘여산초당(廬山草堂)’은 소재는 중국 고사이되 솟구치는 우리 산세에 쭉쭉 뻗은 우리 소나무, 우리 초가 속 고즈넉한 우리 선비의 모습이 들어있다. 겸재와 함께 18세기 한양 화단의 쌍벽을 이룬 현재 심사정, 이 둘의 장점을 결합한 후대의 단원·혜원의 그림에 이르면 문화의 절정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간송이 여러 해 공들인 끝에 36년 일본서 비싼 값을 치르고 되찾아온 ‘혜원전신첩(惠園傳神帖·국보 135호)’ 30폭 그림 중 ‘단오풍정(端午風情)’‘주유청강(舟遊淸江)’‘월하정인(月下情人)’‘유곽쟁웅(遊廓爭雄)’ 등 계절별 풍속도 네 폭이 공개된다. 조선시대 여인 초상화의 으뜸으로 꼽히는 ‘미인도’도 만날 수 있다. 그림 뿐 아니라 글씨에서도 안진경체·왕희지체·동국진체 등 시대별 흐름을 볼 수 있다. 석봉 한호(1543 ~1605), 추사 김정희(1786 ~1856), 다산 정약용(1762~1836),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 ~1898) 뿐 아니라 영조(1694 ~1776)가 83세에 쓴 글, 한글 궁체로 쓴 혜경궁 홍씨(1735 ~1815)의 편지도 나온다.
2년 전 봄 ‘간송 탄신 100주년 기념 특별대전’에는 모처럼 나온 국보급 문화재 100선을 보기 위한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번에도 서둘러야겠다. 26일까지. 무료. 02-762-0442.
권근영 기자
◆간송(澗松) 전형필(1906∼62)=교육자이자 문화재 수집가. 1926년 휘문고보를 거쳐 29년 와세다대 법학부 졸업. 조선 최대 지주 집안에 태어나 25세에 10만석을 상속받았다. 뛰어난 감식안을 지닌 위창 오세창과 함께 이때부터 문화재 수집에 힘썼다. 심사정의 길이 8m 산수화 ‘촉잔도권(蜀棧圖卷)’을 당시 큰 기와집 다섯채 값인 5000원에 산 뒤 6000원을 또 들여 일본서 수복해 온 일화가 유명하다. 40년 경영난에 빠진 보성고보를 인수, 해방 후 1년간 교장직을 맡기도 했다. 62년 문화포장, 64년 문화훈장 국민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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